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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19-02-1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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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 3.7작전' 적도발 응징 전통을 잇다!

3사단 71포병대대, 3.7완전작전 기념행사 실시

기사입력 2012-03-08 11:01 최종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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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DMZ였다...' 우리는 비무장지대를 나타내는 푯말을 교체하는 보수작업중이었고, 주위는 평온했다.... 하지만 그때, 우리를 향해 날아온 총탄들이 내 전우의 사지를 꿰뚫었고, 우리는 지옥의 문턱에서 이내 반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패배의 기운은 짙어져만 갔다. 전투의 승기는 이미 적들에 넘어간 뒤였다. 그때였다. 우렁찬 사격음과 함께 아름다운 궤도를 그리며 아군의 포탄이 적GP에 낙하하였고, 우리는 그 지옥같은 전투에서 살아 돌아 올 수 있었던 행운아가 되었다.

 

전쟁소설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여년전, 1973년 3월 7일 비무장지대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다.

 

1973년 3월 7일, 14시 15분부터 18시 30분까지 강원도 철원군 읍내리 지역인 아 3사단 진백골연대 전방 DMZ에서 수색대대 중대장 인솔 하에 DMZ푯말 보수작업 중 적GP에서 무력 총격 도발을 감행함으로써 사건은 시작되었다.

 

 

적과 교전 중 아군 피해가 발생하여 구출작전을 시행하였으나, 지속적인 적의 총격으로 구출작전이 제한되자, 당시 사단장 준장 박정인(제25대 3사단장)의 명을 받아 당시 71포병대대장 중령 한명희는 즉각적으로 적 GP에 사격준비를 지시하였다.

 

사격 준비 보고를 받은 대대장은 즉각적으로 사격명령을 하달하였고 이내 포구에서는 화염을 내뿜었다.

 

포탄사격은 1973년 3월 7일 14시 15분부터 18시 30분까지 약 4시간 15분동안 실시되었으며 포탄은 총 74발을 사격하였다.

 

아군의 지속적인 포탄사격으로 적의 총격은 이내 잠잠해졌으며 아군은 부상당한 병력을 신속히 구출하여 작전은 종료되었다.

 

당시에는 적의 피해 규모를 알 수 없었으나 작전 이후 귀순한 북한군 군관 소위 유대윤에 의해 우리 사단 포병이 사격한 포탄이 적 GP에 명중하여 적 29명이 모두 몰살되었고, 이로 인하여 북한 전방사단과 후방사단이 교체되는 문책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당시 망설임 없이 포탄을 쏘아올려, 초탄에 총안구를 꿰뚫어 적 GP를 명중, DMZ에 투입후 임무수행중이었던 아군을 구해낸 주역이 바로 3사단 예하 제 71포병대대이다.

 

71포병대대는 작년에도 재현행사를 가졌던 데 이어 ‘3.7 완전작전’ 39주년을 맞아, 3월7일 다시 한번 이 완전작전의 재현행사를 가졌다.

 

제 71포병대대장 박해청 중령은 이 행사를 계획하면서 “우리 71포병대대는 39년 전 적의 무자비한 도발에 공격받던 아군에 간단없는 화력지원을 제공, 초탄에 적 GP를 꿰뚫은 역사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앞으로도 39년전 적 29명을 몰살시켰던 그날, 우리가 쏘아 올렸던 초탄처럼 ‘우리를 넘보면, 제 몸 불타오른다’는 사실을 적에게 일깨워 줄 수 있도록 열심히 임무수행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이번 행사간에 71포병대대는 김화초교 교장과 모범학생 20여명을 초청했다.

 

또한, 3.7완전작전 당시 실제 수색작전 도중 순직했던 장병들이 몸담았던 3사단 수색대대 장병들을 비롯, 인접대대 모범장병들과 백골전우회 및 이장단을 행사간에 초청하여 장병들이 직접 재현하는 완전작전 재현행사를 관람‘지역주민들의 안보의식’과 ‘장병들의 항재전장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은 물론, 지역 원로까지 우대하는 ‘일석 삼조’의 효과를 얻게 되었다. (자료-71포병대대)

박미숙 기자 ()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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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0
  • 김화인
    2012- 03- 08 삭제

    당시 이처럼 즉각적인 대응으로 백골부대에 전투태세 명령을 내리고 병력과 화력무기들을 철책으로 모두 집결시키고 북한의 침공을 일격에 박살낸 박정인 사단장은 전역을 하게 되였지요? 이유는 작전지휘권을..